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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뉴스] 가족에게도 정의가 있는가
조회 : 32,572
2013.02.10 15:07

가족에게도 정의가 있는가

시사INLive | 장정일 | 입력 2013.02.07 13:19

2006년, 일본 후쿠오카 현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자살했다. 가해 학생들은 전혀 뉘우침이 없었다. 어떤 가해 학생은 "아아, 뒈져버렸군, 주물럭거릴 녀석이 없어져서 심심하네"라고 아쉬워했고, 조문을 갔던 또 다른 가해 학생은 관 속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극작가이자 현역 고등학교 교사인 하타사와 세이고 씨는 "나도 교사이기 때문에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사람이 죽었다면 뭔가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라면서, 이것은 반드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원래는 희곡이었으나, 한국에서는 200자 원고지 600장 안팎의 경장편 소설로 변신한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다른, 2012)가 바로 그 작품이다.





ⓒ사진가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 하타사와 세이고 지음, 다른 펴냄

원작 희곡의 무대는 일본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힌다는 기독교계 사립 여자 중학교 회의실. 그날 아침 일찍 2학년 학생 하나가 자기 반 교실에서 목을 맸다. 그 학생은 자살하기 전에, 가해 학생 다섯 명의 이름을 적은 유서를 학교로 보냈다. 학교 측은 오후에 배달된 편지를 읽고 가해자로 지목된 다섯 학생을 개별 선생의 보호 아래 격리한 다음, 그들의 부모를 불러 모은다. 저녁녘에 회의실에 모인 각양각색의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동급생을 자살로 내몬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혐의를 부인한다. 자기 딸은 그럴 리 없으며, 자살을 한 학생에게는 남모르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살을 한 학생은 슈퍼마켓에서 시간제 점원으로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고자 신문보급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해 학생들은 학칙으로 금지된 아르바이트를 고자질하겠다고 협박해서 돈을 뜯었다. 이지메(왕따)에 재미를 들인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했고, 그것을 거절하자 협박용 나체 사진을 찍었다. 그런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자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정의로는 애들을 지킬 수 없다'면서 유서와 휴대전화에 남은 사진과 같은 증거를 인멸하고, 교장은 그것을 묵인한다. 한편 보호 중인 가해 학생들은 피자타령과 장례식에 입고 갈 옷 걱정을 늘어놓는다.

일본에서 큰 반향을 얻은 이 연극이 낭독 공연 형식으로 한국에 선보였던 2012년 1월, 우리나라는 그 전해 12월19일에 벌어진 충격적인 학교 폭력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대구 ㄷ중학교 2학년 권 아무개군이 동급생인 서 아무개군과 우 아무개군 등 다수의 학우들로부터 물고문·구타·금품 갈취 등의 상습적 괴롭힘 끝에, 부모와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 일로 전 국민이 분노했지만, 울산·영주·광주 등지에서 벌어진 유사한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는 그런 사정 속에서 같은 해 6월 한국 무대에 올랐고, 국내 출판사의 특별한 요청으로 작가는 자신의 희곡을 소설로 번안했다.





이지영 그림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가 < 뒷모습 > (현대문학, 2002)에 쓴 짧은 글을 보면,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과 가해 학생 부모의 뻔뻔스러운 '자식 편들기'는 가족과 학교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생물학적 환경 속에서는 정의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라면서 생물학적으로 맺어진 가족은 무조건적 사랑이 유세하는 자리라고 말한다. 반대로 "정의와 지적 노력의 공동체"인 학교에서는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대신 "우정이 활짝 피어"나는데, 우정은 "비밀과 배타적 결속"이 본질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왕따' 현상이 학내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가해 학생 부모의 이기적인 자식 사랑 또한 비정상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우려를 낳는다.


영화 < 시 > 가 드러내는 아이러니


이런 우려가 있는 한편, 많은 사람들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 시 > 에서 희망을 찾는다. 미셸 투르니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지배하는 가족의 자리에는 정의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했지만, < 시 > 의 주인공 미자는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던 손자를 고발하는 것으로 용케도 사적 영역(가족)에 공적 윤리(정의)를 관철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아이러니는 사적 영역에 공적 윤리를 끌어오는 일의 지난함을 다시 확인케 한다.

최근에 출간된 김경욱의 <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 > (강, 2013) 역시 미자가 정의를 가족의 자리에까지 가져올 수 있었던 동력으로 영화 속에 나오는 김용탁(영화 속 이름, 실제는 김용택) 시인의 교시와 미자의 '시 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시인의 교시에 따르면, 시란 '대상을 잘 관찰하는 것이며, 그 훈련 끝에 타자와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미자는 그런 훈련을 통해 자살한 희진의 고통에 공감하고, 가족이라는 생물학적 환경을 넘어 손자를 고발하기에 이르게 된다. 갈 데 없는 계몽 담론이다.

그보다 귀담아 들어야 할 이 영화의 유일한 교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미자가 피력하는 시인 기질이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시인 기질이 좀 있지. 꽃도 좋아하고, 이상한 소리도 잘하고." 영화에서 두 번 반복되는 저 대사의 핵심은, 시인이란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 이상한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이런 규정은, 공적 정의를 가족의 자리로 가져오는 것의 불가능성을 명시한다. 미자는 말 그대로 '미친년'이기 때문에 자신의 손자를 고발할 수 있었는데, 미치는 게 쉬운가? 좋은 말로 해서, 아무나 신춘문예에 당선하는 게 아니다. 더욱이 정의를 가족의 자리에까지 가져와야 한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미친년(시인)은 추방마저 각오해야 한다.

실제로 영화의 결말은 미자가 손자를 고발하고 자살한 것으로 암시되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살아서 그녀의 가족(손자를 맡긴 딸)과 이웃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수미일관하게도 미자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일찌감치 치매 판정을 받아놓았으니, 치매 환자가 다시 미친년(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중의 불가능성이자, 정의를 가족 안으로 끌어온 사람이 들어야 하는 욕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그동안 숱한 조언자와 유권자로부터 아버지 박정희를 가족의 가치가 아닌, 공적 윤리의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문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치매 환자·미친 사람·시인'이 되라는 말이나 같아서 실천이 쉽지 않다. 미친 사람이나 시인이 된다는 것은, 현상 유지(고정관념)를 중단하고 스스로 혁명이 되는 것을 뜻한다.

장정일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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